<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7. 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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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7. 이변
  • 윈터뉴스코리아
  • 승인 2014.06.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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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고시절의 필자>


  광성고 1학년 때였다.   종합선수권대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종합선수권대회는 지금도 국내 대회로는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지금은 대학과 실업(프로)이 실력을 겨루지만 그 때는 고등학교팀도 출전이 가능했고, 모든 팀들이 출전하는 가장 규모가 큰 대회였다.  
   승승장구하던 우리팀은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연세대학을 만났다.   당시 광성고 3학년에는 김형식, 오무헌, 김종배, 손동수.  고2에는 양은택, 강기현, 김종형, 김명렬.  그리고 1학년은 나,  임춘관, 박영배, 안상우, 강명국 등 20명이 고교팀으로서는 막강한 멤버를 구축했다.  
   하지만 아무리 광성 멤버가 좋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패배를 예상했다.   예나 지금이나 고교팀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대학 정상팀을 꺾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는 송동수, 양은택 선배와 1조 공격수로 출전하고 있었다.  수비는 김형식-오무현.   나는 그 경기에서 1피리어드에 선취골과 3피리어드에 쐐기골까지 넣었다.  결국 광성고는 당시 전국 최강 팀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던 그 연세대학을 4대2로 꺾었다.  믿겨지지 않는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었다. 
   언론에서도 광성고의 승리를 대서특필했다.  두 골을 넣었던 내 스토리도 아주 크게 실려 전국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겨울철에는 아이스하키와 농구,  빙상대회 이외에는 큰 스포츠 행사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는 일약 전국구 스타가 된 것이다.   아이스하키 입문 2년 만에 이룬 최고의 성적표였다.
   연대나 고대는 고교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을 4년 동안 모아 놓았기 때문에 고교팀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4~5골차는 쉽게 벌어진다.  
   그 때 연세대학에는 신상협, 이종민, 김종갑, 김해성 등 국가대표들이 대거 포진한 사실상 국가대표팀이었다.  
  
   광성고가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연세대를 꺾은 이후 협회에서는 규정을 바꿔 종합선수권대회에 고교팀이 출전할 수 없도록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광성고가 아이스하키 역사를 바꿔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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