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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54. 국가대표 지도자, 그리고 목동링크
윈터뉴스코리아 | 승인 2015.05.24 10:59

 


 98년의 악몽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한라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면서 나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다시 복귀했다.  당시 입시비리 사건으로 고교,  대학의 지도자들이 모두 구속되면서 국가대표팀을 이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때는 국가대표 코칭스탭이 되려면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사람은 일정기간 자격이 정지됐다.  신호경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 겸 전무이사가 "선배님은 유일하게 벌금형을 받아서 자격이 있으니 국가대표팀을 맡아달라"고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나는 장우정(전 휘문고감독)과 동원의 김삼덕감독을 코치로 임명하고 2000년 중국 북경에서 벌어졌던 세계선수권대회(C풀)에 나갔다.  선수는 한라의 심의식, 이종훈 등이 주축이었다.

   우리는 하얼빈에서 약 일주일 정도 전지훈련을 한 뒤 북경으로 들어갔다.  중국 임원들은 우리를 매일 불러내 술을 냈다.  마냥 거절할 수 없어 나는 꾀를 냈다.  아주 독한 술을 아주 작은 술잔에 계속 따라주는 중국임원들에게 지기 싫어서 엄지손가락을 술잔에 푹 담가 술을 거의 모두 넘치게 한 뒤 마시는 척하면서 버텨냈다.   대회에서도 한국은 다행히 최하위는 면할 수 있었다.  

   나는 국가대표 지도자를 꽤 오래 지냈다.  84년 고려대 코치가 되면서부터 국가대표 코치를 했고, 이후 10여 년 간 국가대표를 맡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렸던 유니버시아드에 신호경코치와 출전해 일본을 꺾었던 것이다.  비록 국가대표 대결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최원식,  김성훈 등이 뛰었던 대회에서 처음 일본을 이겼다.    

   그 때 일본 선수들은 우리에게 뒤지자 한 선수가 교대를 하면서 우리 벤치 쪽으로 침을 뱉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일본 벤치쪽으로 뛰어가 그 선수를 혼내주려고 했다.  그 때 벤치에 있던 박갑철 회장이 "김감독.  참아.  처음 일본을 이기는 건데 네가 참아야지"라고 말려서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일본을 처음 꺾었다는 것에 우리는 자부심을 느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수준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삿포로 U대회에는 고 박종국감독을 모시고 코치로 출전해서 북한을 꺾었다.  북한을 두 번이나 이기게 되자 전두환 대통령은 대회가 끝나고 조무성 회장,  박종국감독,  그리고 선수 대표 몇명을 청와대로 불렀다.  나는 코치여서 대상에서 빠졌다.

   그 때 전두환 대통령은 "선수들에게 뭐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고, "선수들이 마음놓고 훈련을 할 수 있는 아이스링크가 필요합니다"라고 청원을 했다.  전두환대통령은 그자리에서 아이스링크 건립을 약속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져 오늘의 목동링크가 탄생했다.  

   목동링크는 북한을 꺾었던 80년대 국가대표 선수들의 피와 땀이 인정을 받아 탄생한 의미 심장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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