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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57. 한라 총감독, 그리고 아시아리그의 출범
윈터뉴스코리아 | 승인 2015.06.14 12:40

2003년부터 1년간 시범리그를 거친 아시아리그는 2004년 9월 드디어 막을 올렸다. 시범리그 때 한국, 일본에서 불과 5개팀이 참가했던 것에서 훨씬 늘어난 4개국, 8개팀이 참가하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아시아리그가 출범하게 된 것이었다.

8개 팀은 안양 한라를 비롯해 일본의 고쿠도, 오지제지, 크레인스, 아이스벅스 등 4개팀 그리고 중국 치치하르와 하얼빈, 러시아의 골든 아무르가 출전했다. 그 때부터 언론에서는 '빙판의 3국지'라고 표현했다.  

아시아리그가 시작할 때만 해도 일본의 전력은 확실하게 우리보다 위였다. 그럼에도 한라는 첫 경기에서 아이스벅스와 접전을 벌여 1대2로, 두번째 경기에서는 고쿠도에게 2대3으로 패했다. 생각보다 잘했지만 이기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선수들은 점점 리그에 적응해 8개팀 중 5위를 했다.

시범리그를 할 때 만해도 고려대링크를 홈으로 사용했던 한라는 2004년 아시아리그 원년부터는 안양으로 둥지를 틀었다. 진짜 프로팀다운 운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신중대 전 안양시장의 도움이 컸다. 경기고교 재학시절 아이스하키를 해 봤다는 신 전 시장은 전폭적으로 한라를 지원해줬다. 웨이트장, 사무실 등 구단이 사용할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은 물론이고 경기때마다 링크를 찾아 큰 관심을 보였다.  

신 전시장은 관중동원을 위해 통-반장 회의 때 시민들이 구경을 하도록 알리기도 했다. 또 시에서 표를 직접 구입해 불우이웃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한라가 5위를 한 것에는 NHL에서 우승컵을 다섯차례나 들어 올렸던 핀란드의 영웅 에사 티카넨이 뛴 것도 한 몫했다. 티카넨은 사실 한국에서는 영입하기 어려운 거물이다. 그런데 한국여성과 결혼한 핀란드인 카이(유로한라 단장)가 한국에 와서 살고 있을 때 아시아리그가 탄생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직접 설득함으로서 가능해졌다.  

당시 마흔살이었던 그는 선수 컨트롤을 정말 잘했다. 자신이 선수들에게 맥주나 소주를 사주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배울 것이 많았다. 2년 간 뒤면서 선수의 자세가 무엇인지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나이가 많아 비록 스피드는 떨어졌지만 송곳같은 패스로 선수들을 놀라게 했다.

도쿄 원정경기에서는 상대팀 선수가 6명이 등장하자 티카넨은 퍽을 주심에게 패스하면서 투메니맨 반칙이라고 알려줄 정도로 경기를 잘 읽었다. 티카넨은 당시3만 달러 정도였던 용병선수들의 2배가 넘는 거액의 연봉을 지급했지만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활약했다.

아시아리그 원년 우승팀은 고쿠도였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일본제지 크레인스를3승1패로 물리쳐 패권을 차지했다. 

이후 고쿠도는 팀을 해체했지만 대부분 선수들의 체격이 좋았고, 캐나다 스타일의 정통하키를 구사했다. 크리스 율, 조엘 피빅 등의 공격력은 압권이었다.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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