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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59. 한라 13년. 그리고 이별
윈터뉴스코리아 | 승인 2015.06.29 17:05

한라 창단감독, 총감독을 거친 나는 아시아리그가 시작되면서 단장으로 승진했다. 후임감독은 창단 때부터 코치로 나를 보좌했던 변선욱이었다. 사실 시범리그 때는 단장이름을 걸치기만 했을 뿐 예전처럼 감독역할을 했다. 

아시아리그가 본격화 되면서 나는 진짜 단장이 됐다. 변선욱 감독을 보좌하기 위해 체코 출신 베보다가 코치로 부임했다. 베보다 코치는 49년생으로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일본팀에서도 감독을 지낸 그는 늘 수첩에 선수 개개인의 특성 등을 메모했다. 정말 꼼꼼한 지도자였다. 

베보다의 기용은 변감독이 경험이 적으니 그에게 "많이 배우라"는 것이 구단의 뜻이었다. 그래서 변선욱감독이 팀을 이끌 때 베보다 코치는 선수지도를 했고, 변감독은 작전을 맡았다. 

그런데 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 결국 트러블이 생겼다. 변선욱 감독의 불만은 "한국 선수들은 베보다 당신보다 내가 더 안다"는 것이었다. 둘이 충돌하자 베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성적과 관계없이 구단은 두 시즌 만에 변선욱을 경질했다. 도쿄에서 벌어진 원정경기 때 크게 리드하던 경기를 역전패한 것도 한 요인이 됐다. 후임은 베보다였다.

베보다는 김창범(현 매니저)과 배영호(현 상무감독)를 코치로 임명하고, 새 사령탑이 됐다. 그때 나는 단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베보다는 선수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감독은 선수들과 수시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언어 때문에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선수들의 불만이 쌓여만 갔다. 

특히 선수교체를 너무 자주했다. 실수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 교체를 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불안해했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을 1백% 발휘하지 못했다. 베보다는 선수들이 소화해 내지 못하는 수준의 플레이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전천후 선수'라고 평가했던 김경태가 가장 적응을 하지 못했다.

김경태는 송동환과 함께 국내 아이스하키 최고의 콤비를 이뤘던 선수였다. 그래서 내가 김경태를 붙잡고 달래기도 했다. "선수는 감독을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야구에서 4번타자라도 감독이 번트를 지시하면 따라야 하는 것처럼 선수는 감독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줬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팀이 균열되기 시작했다. 대화를 하도록 노력했지만 팀성적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베보다는 아시아리그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고 하차했다. 첫 외국인 지도자였던 베보다 영입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베보다 감독은 시즌 도중 정몽원 구단주에게 "그만 두겠다"고 했지만, 구단주는 시즌을 끝까지 마무리 해 줄 것을 원해 시즌을 마치기는 했다. 단장으로서 나도 책임을 느꼈다. 구단주께 내가 다시 나서 보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는 베보다가 물러나면서 함께 한라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2007년이었다. 94년 한라 창단감독으로 임명된 후 13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고교-대학-실업-프로팀 감독을 거쳐 단장까지 지낸 나는 정말 엄청난 행운아였다.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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