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아이스하키 김세일의 하키야사
<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60. 꿈나무를 위해 봉사하고파
윈터뉴스코리아 | 승인 2015.07.13 16:12


내 나이 어느 덧 68. 시쳇말로 내일 모레면 칠십이다. 1973년 보성고 코치를 시작으로 보성고 10년,고려대 13년, 한라 13년 등 모두 36년 지도자 생활. 광성중 2학년 때인 1963년부터 거스르면 52년을 얼음판에서 보냈고, 지금도 그렇다. 사춘기 시작부터 젊은 시절, 청춘, 이후의 모든 인생을 아이스하키와 함께 해왔다.
 
돌이키면 지난 50여년의 아이스하키 인생은 마치 엊그제 난생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기억처럼 짧게 느껴진다. 그런데 손주를 안고 남 얘기처럼 재밋게 들려줄 게 무엇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맙소사, 내 아이스하키 인생은 너무도 길고 긴 여정이었다. 나에게 닥친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가 운명이었고, 모두가 새로운 것이었으며, 즐거운 때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쉽게 지나간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은 “내가 만약 아이스하키를 안했다면?”이란 상상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이준철 김창진 두 선배가 지도자 제안을 했을 때 “어차피 군을 가도 3년인데 군 면제된 대가로 3년만 하자”고 했던 게 36년을 이어가게 됐다. 사실 “3년 뒤에는 무엇을 할까”는 나의 생각은 젊은이로서 너무나 막연했고,무엇을 하겠다는 강렬한 목표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참으로 보람있는 아이스하키 인생을 살았다. 이 지면을 빌어 내 인생을 제시하고 이끈 두 선배에게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지난 36년 지도자 생활 동안 거쳐 간 제자들을 나는 전부 기억하고 있다. 이들 전부를 나는 사랑한다. 나는 또 운도 좋은 성공한 지도자다. 한 때 국가대표 절반 이상이 내 제자들인 적도 있었다. 솔직히 한라 위니아, 안양 한라, 또는 고려대 감독 시절보다 보성고 감독 때가 더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3년만 하겠다”는 게 후배 선수 양성매력에 푹 빠져 3년이 지나면서는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어도 피곤한 줄 몰라 오히려 그만두라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직도 지도자 생활을 끝낸 게 실감나지 않은 때가 있다. 가끔은 꿈에 벤치에서 고래고래 고함 지르는 나를 느끼곤 한다. 후배들이 “아직은 은퇴할 나이가 안 됐는데요”라는 빈말(?)을 들을 때면 “다시 해볼까?”라는 의욕도 솔직히 되살아나곤 한다.
 
만약 나에게 또다시 지도자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초등학교 이하의 유소년을 가르치고 싶다. 스케이트를 신겨주고, 스틱을 쥐어주면서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도 후배 코치들은 이 보람과 매력을 모를 것이다. 팀의 명예를 걸고, 또는 태극마크를 달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결전에 임하는 승부사는 이제 후배들의 몫이다. 반면 어린이들에게 아이스하키를 가르치는 일은, 이 나라, 이 사회가 나에게 투자한 대가를 나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나로서는 기꺼이 봉사해야할 의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저작권자 © Winter News Korea,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윈터뉴스코리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로 139,5층  |  문의 : 070-7722-0112
제호 : 윈터뉴스코리아  |  등록번호 : 서울, 아02922  |  등록일 : 2013년 08월 29일  |  발행-편집인 : 송희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희준
Copyright © 2019 Winter News Korea.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