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아이스하키 김세일의 하키야사
<김세일의 하키야사> 중랑천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가고... 69.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 김희우
윈터뉴스코리아 | 승인 2015.11.19 13:22
<고려대 감독시절 김희우(오른쪽)과 함께>

 

[윈터뉴스]내가 지도자로서 가르쳤던 선수 중 최우수 선수를 꼽으라면 고려대 감독을 맡고 있는 김희우를 꼽을 것이다.

경성고등학교 출신의 김희우는 당시 최고의 선수였다. 김희우는 체격 조건도 좋고, 체격,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출중했다. 리더십도 있고 포워드와 디펜스를 모두 볼 수 있는 전천후선수였다. 포워드로 나서면 위협적인 공격수이고 디펜스에서는 게임을 풀어주는 리더였다.

김희우는 이미 연세대로 기울어 있었다. 그 때는 지원서가 있어서 학교장 직인을 받아 대학에 제출하면 모든 게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성고 박종국 선생은 지원서에 학교장 서명을 받고 갖고 다녔다. 고대에서 알아보니 연대에 지원서는 접수되지 않았다. 박종국감독이 연세대학교 길회식 선생과의 갈등으로 아마 망설였던 것 같다.

나는 아직 결정이 안된 것으로 판단하고 뒤집기에 나섰다. 김희우 아버지는 동부건설(전 미륭건설)에 근무하고 있었고, 사우디에 간부로 파견 나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동부는 당시 김진만 회장의 아들인 김준기회장(현 회장)이 임원으로 있었다. 김준기회장은 마침 김만영 감독의 대학 동기동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양동작전을 폈다. 김만영감독이 김준기회장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탁했다.  김준기회장은 직접 나서서 김희우 아버지 설득작업에 나섰다. 나도 직접 김희우를 설득하기 위해 경성고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김희우의 집은 경성고 근처였다. 매일 부장선생과 김희우를 만나고 집에까지 가서 어머니를 설득했다. 희우의 어머니는 춘천여고를 나온 엘리트 어머니셨다.

어느 날 김희우 감독 아버지가 전화를 직접 해 왔다. “희우를 고대에 보내겠다”는 반가운 소식. 김희우 어머니가 박종국 선생을 만나 지원서를 다시 고쳐 고대에 접수했다. 박종국 선생은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지만, 워낙 김희우 부모의 뜻이 완고해 방향을 틀었다.

김희우는 고대에 입학한 뒤 우리의 예상대로 훨훨 날았다. 김희우는 정말 모범선수였다. 감독이 하지 말라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동료애도 최고였다. 선배들은 그를 아꼈고, 후배들은 그를 어려워하면서도 따랐다.

학교에서는 김희우를 대학원에 진학시켰다. 나중에 교수를 시키려는 뜻이었다. 김희우는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려는 순간 경성고의 감독직 제안을 받고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그가 지도자가 되는 것보다는 박영균(경희대 교수), 최영덕(중앙대 교수)처럼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 교수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경성고 감독을 거쳐 하이원과 현재의 고대감독이 되었다. 

김희우가 고려대에 다닐 때는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동대문 링크보다 우리가 마음대로 훈련할 링크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이공대학에 파이프를 깔아 야외 링크를 만들었다. 날씨가 추운 날은 문제가 없었지만, 부실로 인해 빙질에 문제가 생겼다.

연수관 욕조에 더운물을 받아 놓았다가 소방호스를 연결해 정빙을 했다. 연습이 끝나고 빗자루질을 하는 것이 일이었다. 10m정도의 호스를 연결해 250m 이상 되는 거리를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작업도 모두 선수 몫이었다.  

선수가 길게 늘어서 "물을 틀어라" "꺼라" 소리를 질러가면서 정빙을 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합숙을 하지 않다가도 집합해야 했다. 연락을 따로 안 해도 모두가 학교로 모여 태양막이 천막 위 눈을 치웠다. 눈이 많이 오면 천막이 찢어졌다. 그래서 10m짜리 봉을 만들어 천막의 눈을 터는 일도 했다. 한 줄로 쫙 서서 눈을 털어내는 작업이었다.

가로 30M, 세로 60M짜리 링크의 눈 치우기는 정말 고역이었다. 눈의 무게는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다.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천막을 세로로도 쳐보고 여러 방안을 다 만들어 봤다. 줄을 타고 올라가 선수들이 일일이 작업을 했다. 원숭이처럼 사다리 타고 올라가 노래 부르면서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수고했다고 선수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위로를 해주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추억이지만.

선수들은 “좀 좋은 술 사주세요”라고 하면 "돈이 어딨냐 인마”라며 막걸리와 순대를 사줬다. 훈련을 잘하려고 만든 링크가 오히려 훈련 시간을 빼앗아 갔다. 공사가 부실했기 때문에 중간 곳곳이 얼지 않아 이를 관리하느라 결과적으로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김희우 이동호 등 그때 3, 4학년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으로 김만영선배가 지금의 링크를 만들었다.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윈터뉴스코리아  webmaster@winternewskorea.com

<저작권자 © Winter News Korea,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윈터뉴스코리아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로 139,5층  |  문의 : 070-7722-0112
제호 : 윈터뉴스코리아  |  등록번호 : 서울, 아02922  |  등록일 : 2013년 08월 29일  |  발행-편집인 : 송희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희준
Copyright © 2019 Winter News Korea.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