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 인터뷰] 연세대 전성시대 이끈 92학번 우지원-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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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인터뷰] 연세대 전성시대 이끈 92학번 우지원-박재홍
  • 박진호 기자
  • 승인 2015.12.05 0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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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뉴스/더 바스켓] 누군가가 말했다. 남자는 평생 철들지 않는다고...

나이가 들지언정 평생 철들지 않으며, 심지어 ‘철들면 죽는다’는 말도 있다. 오히려 철이 든 것 같은 남자는 현실에 찌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소년의 가슴으로 평생을 사는 남자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학창시절의 동창들을 만나면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과거 시절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 두 남자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농구부 전성기 시절,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녔던 우지원과 대학시절 ‘리틀 쿠바’라고 불리며 이미 괴물타자로 자리를 굳혔던 박재홍.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의 이들 둘은 대학 스포츠의 황금세대라고 칭할 수 있는 92학번 동기다.

선수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이들은 이제 자신의 종목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팬들과 마주하는 해설위원이 되어 있다.

철들지 않은 40대 남자들의 동문회

쉽지 않은 인터뷰였다. 이들이 함께하는 일정을 잡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미리 일정을 잡았던 날을 앞두고는 우지원 SBS ESPN 농구 해설위원이 연락 두절됐다. 이유는 핸드폰 분실.

<더 바스켓> 9월호의 마감일이 다 돼서 가까스로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장소는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우지원 스포츠 아카데미. 그러나 당일 약속시간에 우지원 스포츠 아카데미는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다 왔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우지원의 연세대 시절, 코치였던 본지 박건연 발행인이 함께한 인터뷰였음에도 옛 제자가 약속시간에 다소 늦었다. 선수시절 괴롭힘에 대한 보복일까? 박건연 발행인은 ‘우지원은 많이 혼나던 선수가 아니었다’라고 말했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 살짝 늦은 우지원에 비해 박재홍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은 아예 대놓고 늦었다. 이유는 늦잠이었다. 헐레벌떡 달려온 박재홍. 그러나 인터뷰 약속시간은 이미 1시간 이상 늦어있었다.

선수 시절이었으면 누구보다도 시간 엄수에 확실했을 두 위원. ‘철이 안 들었다’기 보다는 그만큼 은퇴 후에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재홍은 전날에도 새벽에 중계 일정이 끝났다며 선수 시절만큼 빡빡한 일정을 보내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너 일루와! 선생님 기다리시는 데 지금이 몇 시야? 넌 좀 맞아야 돼!”

우지원이 마치 자신은 늦지 않았다는 듯 박재홍에게 핀잔을 준다. 열심히 달려 온 -그러나 한참 늦게 온- 박재홍은 우지원의 타박과 구타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박건연 발행인에게 “코치님, 죄송합니다”라며 넉살좋게 매달렸다. 박재홍과 박건연 발행인은 각각 야구와 농구 해설위원으로 MBC 스포츠플러스 소속이기도 하다.

자리에 모인 세 명 모두 이제는 해설위원의 직함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만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과거로 회귀했다. 연세대학교 농구 코치와 농구 선수, 그리고 야구 선수로 돌아가 있었다.

“(우)지원이는 뭐 그 때(대학 시절)에 이미 인기에 도취되어 있었죠. 엄청나게 주변의식을 하고 다녔어요!”

“얘는 결혼부터 해야죠! 일단 자기가 갖고 있는 틀을 깨야 해요. 박재홍이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이 누군지 내가 전부 알고 있는데요!”

그들의 유쾌한 대화는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들이 쏟아 낸 폭로를 주워 담기위해 막판에는 급격하게 서로를 칭찬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잠시 후에는 자신이 한 수습을 뒤집고 바로 트집 잡기에 나섰다. 그만큼 허물없이 친한 사이었고,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운 친구였다.

야구와 농구를 넘어선 절친

사실 이들은 연세대 동기라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접점이 없다. 서울에서 자란 우지원과 전라남도 광주 출신인 박재홍은 연세대에 입학하며 처음 만났다. 졸업 후에는 각자 프로에 진출했고 농구선수와 야구선수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같은 학교 출신으로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활약한다는 점은 같지만 결국 함께했던 시간은 대학 시절 뿐. 그마저도 각자 다른 운동부였다. 하지만 이들의 살가움은 남달라 보였다.

해설을 두고도 설전이 이어졌다. "동기지만 해설은 내가 선배"라고 주장한 우지원에 맞서 박재홍은 "그런데 왜 그렇게 못하냐"며 "확실히 스포츠 중계는 엠스플(MBC 스포츠 플러스)이다"라고 되받아쳤다. 우지원은 SBS 로고송까지 부르며 대항했다.

“왜 친해졌는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냥 선배들 때부터 야구부랑 농구부가 친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요. 그때 운동부 숙소가 ‘깡통숙소’라고 불렸는데, 야구부랑 농구부 숙소가 붙어있었어요. 상대방 숙소에 가려면 계단으로 내려가서 돌아가야 하는데 그냥 창문으로 넘어 다니곤 했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일도 있고 서로 우정이 쌓였던 거죠.”

당시는 농구대잔치의 인기가 절정에 이른 시기였고 특히 연세대 농구부는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선수들을 보기위해 연세대를 찾는 팬들이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장난기가 넘쳐났던 박재홍은 많은 팬들이 있는 앞에서 우지원의 운동복 하의를 벗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심지어 속옷까지 함께 내려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때 현장에 있었던 팬들은 뜻밖의 횡재(?)를 했을까?

박재홍은 “농구는 유니폼 상의가 길어서 완벽한 팬서비스는 되지 못했다”며, 벗긴 하의도 자신이 직접 올려줬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우지원은 이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언젠지도 몰라요. 뭐 한 두 번 그랬어야죠!”

이번에는 우지원의 폭로가 이어졌다. 당시 농구부를 찾아온 팬들은 대담하게 선수들의 숙소까지 직접 침입(?)하곤 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팬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농구부와 야구부가 붙어있다 보니 어떤 팬들은 숙소를 잘못알고 야구부 숙소로 난입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

남자 선수들만 생활하는 숙소라서 선수들은 자유로운 복장이나 혹은 탈의 상태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학생들이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나니 난감할 수밖에.

“처음에는 당황해 하더니 나중에는 그걸 즐기더라고요!”

우지원의 폭로에 박재홍은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이야기는 계속됐다. 팬들이 보내 준 과자와 간식거리를 야구부가 많이 가져갔고, 특히 박재홍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

박재홍은 “먹을 게 너무 많아서 농구부 애들은 못 먹고 상하거나 벌레가 생길 수 있어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뺏어간 것이 아니라 농구부가 직접 챙겨줬다는 게 박재홍의 주장. 박재홍은 선수들이 넘어 다니던 2층 창문으로 과자 박스도 넘어왔었다고 말했다.

“그럼 옷은?”

우지원이 다그치자 박재홍은 말문이 막힌 듯 다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팬들이 보낸 선물은 간식뿐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옷도 있었는데, 박재홍은 농구부 숙소에 난입해 우지원이 받은 선물 중에서도 소위 ‘브랜드 의류’를 강탈해 갔었다고 한다.

“그 때 대학야구는 많이 중계를 안했지만 농구는 항상 방송에 나왔잖아요. 경기를 하고 숙소에 들어오면 야구부 애들이 우리한테 와서 경기 모니터를 하고 잔소리를 했어요. 누가 잘했네 못했네 하면서요. (박)재홍이도 그랬죠. 넘어와서 우리 숙소에서 잔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에요! 팬티만 입고 농구부 숙소에서 자다가 다시 가라고 하면 라면이나 끓여오라고 하고 그랬다니까요!”

실력과 노력, 인기와 명성에 결코 뒤처지지 않아

학창시절 함께 어울리며 이들이 주고 받던 대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들은 그저 ‘사는 얘기’를 했을 뿐 야구나 농구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저 '훈련 힘드냐', '코치님이 심하게 하냐'는 말을 물으며 넋두리를 하거나 스포츠와 관계없는 대화를 주로 했다는 것. 그러나 이내 담배를 누구 때문에 하게 됐는가를 두고 왈가왈부하기도 했다. 

“그때 만해도 농구가 최고였죠. 인기도 대단했고...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를 다 통틀어도 그때 연대 농구부만한 인기 팀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인기가 차이가 나서 상대적으로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나는 그때 지방에서 왔으니까 원래 그런가보다 했거든요. 다만 워낙 팬들이 밤낮으로 ‘꽥꽥’ 거리니까 잠을 못자서 시끄러웠죠.”

박재홍은 “그러다보니 어린 나이에 인기에 도취 되서 애들이 건방졌다”고 농담을 던져 우지원을 당황하게 하면서도 당시의 연세대 농구부만한 팀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프로가 아닌 팀이 그러한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연세대 농구부가 유일무이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재홍은 당시 연세대 농구부에 대해 단순히 인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적도 좋았고, 또 그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엄청난 훈련도 소화하는 팀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만한 인기와 성적을 함께 잡을 만큼 많은 노력을 했다는 증언.

우지원 역시 꾸준한 자기관리와 노력을 계속했지만 잘생긴 외모로 인해 오히려 그런 부분이 퇴색됐다는 게 박재홍의 생각. 우지원 또한 자신이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쏟았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팀 훈련은 굉장했죠. 당시 연세대 서대산 훈련은 유명했잖아요. 20km를 뛰는 데 한 시간 반 만에 들어와야 했어요. 산을 뛰다가 마주 오는 트럭을 보고 치이는 게 차라리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래도 전 잘 버텼어요. 그때 (김)재훈이 형(울산 모비스 코치)이랑 (문)경은이 형(SK 나이츠 감독)이 많이 힘들었죠. 하하.”

개인적인 훈련도 만만치 않았다. 어렸을 때 오른팔이 골절됐던 우지원은 부상이 심각해 의사로부터 선수를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하루 1,000개의 슛 연습은 예사였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훈련에 매진했던 학창시절, 이러한 우지원의 슛 연습을 도와주기 위해 공을 잡아주던 후배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팔이 휘어 있잖아요. 농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충희‧김현준 같은 선배들도 슛을 1,000개씩 쏘신다고 해서 나는 무조건 그거보다는 더 던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랑 다르게 저는 팔을 좀 벌려서 던졌어요. 팔이 휘어서 남들처럼 던지면 에어볼이 났으니까요. 폼이 그래서 제 슛의 탄도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좀 낮았죠.”

이러한 모습은 박재홍도 다르지 않았다. 우지원은 박재홍에 대해 “짧은데도 불구하고 몸이 참 탄탄하다”며 웃었다. 덩치가 큰 것도 아닌데 장타력이 좋았고, 발이 빠른데다가 수비도 잘했다며, 한국 프로야구사에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남은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지원은 연세대 92학번 야구 선수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임선동이었지만 타자 중에서는 역시 박재홍이 전체 선수들 중 최고였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박재홍 역시 단순히 타고난 선수가 아니라 엄청난 훈련까지 더해진 선수라는 생각을 전했다. 우지원이 1,000개 이상의 슛을 던졌듯이 박재홍도 1,000번의 스윙을 하며 스스로를 다져갔다.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데, 그저 나 혼자 참고 스윙을 얼마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러고 나면 온 몸이 샤워한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요. 사실 공을 직접 치는 것 보다 허공에 스윙 연습만 하는 ‘공스윙’이 더 힘들어요. 던져주는 공을 치는 건 무의식 중에 습관적으로 치게 되는데, 공스윙은 더 지루하고, 힘들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거든요.”

정신력 키울 수 있는 노력과 시스템 절실

자신들의 노력에 대해 설명을 한 박재홍과 우지원은 지금 현역에서 뛰고 있는 후배들에게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기본적으로 체격적인 조건이 자신들이 운동하던 때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조금 부족해진 것 같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재홍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멘탈’이라는 부분을 잡아주는 게 더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술적인 부분은 성장에 한계가 있지만 그 이상을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은 ‘피지컬’ 혹은 ‘멘탈’이라는 게 박재홍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적인 특성인 ‘엘리트 체육’에서 탈피해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하는 과정이 정착되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지원도 이러한 부분에 동의했다. 본인과 부모, 그리고 코치가 이러한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저희 때는 체벌이나 강력한 훈련으로 정신력을 더 강화시켰거든요. 아마 그런 것들이 4쿼터 막판이나 9회말에 나오는 끈기와 열정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교육을 통해 정신적인 면을 더 성숙하게 해야 하고, 선수들 스스로도 자신이 그 분야에서 성공하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봐요.”

박재홍은 선수가 학창시절, 공부와 운동에 어떤 비율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가에 대한 ‘황금비율’을 아직 우리나라가 찾아내지 못한 것 같다며 우지원의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다.

“결국은 그 부분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프로에서도 선수들에게 꾸준히 교육을 해줘야 한다고 봐요. 야구의 경우 메이저리그는 사무국 외에도 각 구단이 계속해서 선수들에게 미디어를 대하는 자세부터 프로 선수가 갖춰야 할 부분을 계속해서 가르치거든요. 우리나라도 승패에 집착하는 것 만큼 이러한 부분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 내내 아웅다웅하는 모습으로 인터뷰를 유연하게 이끌었던 박재홍과 우지원은 언젠가는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한 서로가 현장에서 더 빛을 발하기를 기원했다. 특히 박재홍은 “야구에 비해 농구는 더욱 지도자들의 연령이 낮아진 것 같다”며, 우지원이 멋진 수트를 입고 코트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우정을 과시했다.

우지원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유소년과 지금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 농구 교실’이라고 강조했지만 박재홍은 “(우)지원이가 결국은 돌아가야 할 곳은 현장”이라고 단언했다.

“해설은 내가 선배”라고 말했던 우지원 역시 박재홍이 “현역 지도자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다시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얼른 좋은 여성을 만나 반려자로 맞이하기를 바란다고 너스레를 놓기도 했다.

해당 기사는 <더 바스켓> 2015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추가/각색했습니다.

박진호 기자 ck17@thebasket.kr
사진: 박진호 기자 ck17@thebaske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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