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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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 조영섭 기자
  • 승인 2020.10.2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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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지난 22일 하늘의 별이 된 심회장의 장례식에 장정구, 이일복, 이경연 등 일행과 참석해 영면한 심회장의 모습을 허망한 심정으로 바라본 필자는 문득 1972년도 발표된 '인생은 연기처럼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것' 이라는 가사가 생각났다. 이 노래는 천재 작사가 박건호의 노랫말에, 노래하는 음유시인 박인희가 부른 곡이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세계 챔피언 유제두, 장정구, 김철호, 이경연, 전주도와 세계랭커 이일복, 김종길, 이은식, 허준, 이기준을 비롯해 그녀의 휘하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SM 체육관 홍성민, 리버 체육관 이철희, 천안 체육관 임성태, 부산 장정구 체육관 박용운, 캡틴 체육관 이동포 관장 등 백 여명의 복싱인 들이 문상객으로 참가해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필자는 심회장과 1983년 8월에 첫 인연을 맺었다. 이번 장례식으로 그녀와 37년이라는 긴 인연의 장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작고하기 이틀 전 까지도 필자와 긴 통화 를 하며 지냈던 심회장은 말년에 중곡 2동 자택에서 '산장의 여인'처럼 지내시면서 가끔씩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단 한번의 왕래가 없는 김철호 챔프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고, 사회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지 못한 이일복의 근황에 안타까움을 표출하셨다.

심 회장은 1978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김성준과 인연으로 복싱계 와 첫 발을 내 딛은 후  2002년 7월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이 4차 방어전에서 호르헤 아로세(멕시코)에게 6회 KO패 하자 그녀도 동반 은퇴를 했다.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전열을 추슬린 2005년,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당시 ‘조선족의 별’로 불리는 조남기 인민 해방군 상장(국군 대장급)의 친동생 조남정을 만나 재기를 모색했다. 이를 위해 필자를 비롯해 WBA·WBC의 플라이급 김용강 챔프, 바로셀로나 올림픽 대표 김재경 등과 3차례 중국의 북경과 남경을 방문했고 당시 중국 내에서 영향력 있던 한국인 국제심판인 강석구 회장 등을 현지에서 만나 중국 각 성(省)의 복싱인사들을 두루 소개 받으며 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지 못한 채 귀국했고 이후 자택에서 운둔생활로 일관했다. 필자와는 1983년에 인연을 맺어 1985년 12월 13일 KO패를 당하고 복싱을 접은 필자가 1989년 4월 그녀의 호출로 ‘88 프로모션’ 사범으로 복귀했을 때 막 창단한 용산공고에서 복싱팀 코치로 컴백하면서 새로운 인연이 재점화되었다.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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