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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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 조영섭 기자
  • 승인 2020.10.26 14:0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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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복싱계 대모' 故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① 이어

[조영섭의 복싱스토리] 그녀의 둘째 오빠는 자유당시절 남대문에서 한주먹 하며 아성을 구축했다. 그의 휘하에 있던 행동대장 김진길 관장이 이후 대원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1978년 최우수 신인왕 출신의 양일과 김철호를 배출했다. 그녀는 1979년 1월 이들을 자택인 워커힐 APT에 입성시켜 후원을 하기 시작한다.

아차산 중턱에 위치한 워커힐은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이 전방부대에서 낙동강전투 순시를 위해 아차산 고개를 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워커 힐’ 이란 지명이 붙었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장수왕이 바둑을 잘하고 또 바둑을 좋아한다고 소문난 백제 개로왕에게 바둑에 능한 도림을 보내서 개로왕의 마음을 사로 잡은 후 3만의 정예군을 파견해 개로왕 일가를 잡아 참수시킨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런 역사적 유래가 묻어 있는 워커 힐에 입성한 페더급의 양일은 174cm의 훤칠한 키에 아마추어 시절 서울 신인·전국 신인 에이어·MBC 신인왕전까지 3개 대회를 싹쓸이했고, 3개 대회에서 모두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며 28연승(1무포함)을 질주한 17세의 복싱 신동이었다.

이런 양일의 말동무를 삼기위해 덤으로 워커힐 APT에 들어온 복서가 천호상전 1년 후배 김철호다. 양일이 주연배우라면 김철호는 조연급도 아닌 엑스트라로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김철호는 선천적으로 난시와 난청 에다 펀치력과 맷집도 약한 평범한 복서였다. 특히 1979년 4월 1일 송재영과 8회전 경기에서 상대의 펀치에 턱뼈가 깨지며 내구력에 균열이 생기는 등 장래성이 없어 보이는 선수였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양일은 손흥민이 활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월드클래스급 선수, 김철호는 박항서 감독이 사령탑으로 활동하는 동남아리그의 평범한 선수였다. 한마디로 두 선수는 노는 물이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천부적인 재질을 지닌 양일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다혈질의 성품 때문인지 석달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워커힐 합숙소를 탈출 하였지만, 곰처럼 우직하게 버틴 김철호는 뒤늦게 포텐 이 터지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고 1980년 1월 26일 베네주엘라 원정 챔피언 라파엘 오로노를 상대로 9회에 극적인 KO승을 거두며 WBC 슈퍼 플라이급 정상으로 5차 방어에 성공해 심회장의 후원에 보은한다.

'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이후 극동출신의 이일복, 장정구 두복서가 자연스럽게 심영자 사단의 워커힐 합숙소에 합류한다. 그녀가 이렇게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1966년 결혼한 남편 문덕만 회장의 전폭적인 외조 덕택이다. 문 회장은 ‘경남고­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중견 전자업계인 ‘정풍물산’ 전무로 재직하다 1976년 9월 정풍물산 사장에 이어 92년에 회장으로 전격 취임했다.

1939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 재학시절 전 프로야구 롯데 감독인 박영길과 야구선수로 동문수학한 전력이 있는 문덕만 회장은 중간에 야구를 접고 서울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풍물산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수출 100억불을 달성하던 1977년 철탑산업 훈장을 받았으며 89년 2월에는 스리랑카의 아반스사와 손잡고 현지에 전화기 생산 공장인 ‘아반스 정풍’을 설립 했을뿐 아니라 90년 4월 미국의 아톰스사와 합작으로 플로리다 주에 판매 전담회사인 ‘정풍 아메리카’를 설립하는 등 인프라가 견고한 안정된 전자 회사였다. 

심 회장은 남편이 회사를 경영하다 자금 압박에 시달릴 때는 경남고 1년 선배이자 5공의 핵심인물인 이학봉 국회의원이 난관을 해결 할수 있도록 많은 편의를 배풀어 도산 위기를 극복 할 수 있었다고 필자에게 회고했다.

또한 장정구 챔프에 의하면 정풍물산 문덕만 회장의 경남고 1년 후배이자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부회장과 서로 막역지우로 지내면서 1980년 1월 김철호가 세계정상에 오르자 ‘롯데 칠성사이다’에, 장정구와 이일복은 ‘동방유랑’에 각각 취직시켜주며 적극 후원하는 등 조력자 역할을 독톡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심영자 사단의 최고의 히트상품인 문성길이 1993년 11월 10차 방어전 에서 벨트를 풀자  94년 모기업 마져 부도라는 직격탄을 맞고 침몰하면서 공중분해 되고 만다. 이후 전열을 재정비한 심 회장은 1996년 염동균 과 손을 잡고 ‘숭민 프로모션’을 신설했다. 

백종권에 이어 1999년 10월 17일 최요삼이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정상에 올랐지만 이번엔 IMF 한파에 시달리다 2002년 7월6일 최요삼이 4차 방어에 실패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2005년 프로모터로 마지막 불꽃을 되살리려 중국행을 시도했지만 불발탄이 되어버리자 자택에서 칩거하며 지내왔었다.  

독일 시인 뮐러는 가난이 몰래 집안에 들어오면 우정은 서둘러 창문으로 달아나 버린다고 말했지만 장정구, 유제두 챔프 같은 분은 심회장과 유시유종을 하면서 한결같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생전에 심회장과 친밀하게 교류하며 지낸 조민 관장과 김철호 관장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야 비로소 참석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레븐슨의 시 ‘세월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기억하라 그대에게 누군가의 도움에 손길이 필요할 때 당신의 팔 끝에 손이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복싱계 대모' 심영자 회장이 떠난 후②

끝으로 심 회장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끝까지 정성을 다해준 김봉겸, 임태수, 윤영식 등 ‘장정구 패밀리’들을 포함해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심 회장님 모든 걸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영면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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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은지 2020-10-28 12:56:46
멋진 기사 감사합니다 잘 읽고가요!!!!

김채원 2020-10-27 17:00:47
잘 읽었습니다 관장님~!!!

김태민 2020-10-27 14:43:40
기자님의 글 다시한번 잘 읽고 갑니다!

이재영 2020-10-27 09:24:02
멋진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
잘 읽고갑니다 ^~^b

인재 2020-10-27 08:41:05
기사 잘읽었습니다 연말까지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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