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지금은 주목을 받는 색다른 직업의 전직 복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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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지금은 주목을 받는 색다른 직업의 전직 복서들
  • 조영섭 기자
  • 승인 2020.11.0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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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날 모인 전직 복서들...그들의 근황은?
엘리트 복서로 이름 날렸던 한양대 공대 황해남 소장
MBC글러브 2회 연속 우승 강택주 운영, 세기체육관
MBC 글러브 2회 연속 우승자 강택주 선수
MBC 글러브 2회 연속 우승자 강택주 선수

[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은퇴한 강택주 선수가 운영하는 세기체육관에 모처럼 전직 복싱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가장 많이 불려지는 시월의 마지막 날. 작사가 박건호가 처음 가사를 썼을 때에는 시월이 아닌 구월의 마지막 밤이었는데 음반이 한달 늦춰져 부득이 시월로 이월되어 시월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구월의 마지막 밤이든 시월의 마지막 밤이든 코로나에 시달리는 생계형 자영업자인 필자에게 값싼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가을 하루 해는 너무도 빨리 저문다.

1517년 10월 31일 바로 이날은 마틴 루터의 그 유명한 종교개혁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0년 10월 31일 필자는 이수역 인근에 있는 강택주 관장이 운영하는 세기 복싱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용산 경찰서 교통계 백승영 경감과 노원구 강력계 형사인 김응희 경감, 나라건설 황해남 소장 그리고 세기체육관 강택주 관장이 모임을 한다는 연락을 사전에 받았기 때문이다. 

좌로 부터 황해남 소장, 강택주 관장, 백승영 경감

이 들은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삶의 과속 패달을 밟아온 바쁜 일정 속에 틈틈이 망중한을 이용해 모임을 갖고 있는 전직복서 4인방이다. 용인대 출신의 백승영, 김응희 경감은 1989년 경찰에 입문하여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않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않은 공명정대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올곧은 베테랑 경찰관이다. 특히 1980년 안동공고 1학년 때 제2회 한중 국재 대회에 학생대표로 출전한 경력이 있는 김응희 경감은 라이트 웰터급에서 48전 42승(29KO.RSC) 6패를 기록한 강타자 출신이다, 

현역시절 강한 카리스마와 당당한 표정, 기죽지 않는 눈빛과 함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전차처럼 전형적인 러씽 파이터였던 김 경감은 1998년 10월 27일 노원구에서 발생한 미제 살인사건을 재수사에 착수해 집요한 추적 끝에 결국 18년 만에 종결시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장본인이다. 

노원경찰서 김응희 경감(좌)과 용산경찰서 백승영 경감(우)
노원경찰서 김응희 경감(좌)과 용산경찰서 백승영 경감(우)

그는 수사 착수에 앞서 넘고 건너야 할 강과 산이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었지만 사건을 해결 하기 위한 근성과 투혼은 강과 산을을 뒤덮고도 남았다. 그는 복싱인 특유의 촌각의 쉼도 없이 활활 타오른 열정으로 사건 해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대목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귀양살이가 18년이었고 박정희 정권 통치기간이 18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긴 세월동안 세인들의 기억 속에 묻혀진 사건이 었지만 그는 흐느끼는 피해자 딸의 영상이 잊혀지지 않아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범인 검거에 착수해 결국 사건을 종결지었다.

황해남 나라건설 소장은 이색적으로 한양대 공대 출신의 복서다. 중산체육관 출신의 황해남은 1973년 제26회 전국 신인선수권 대회 페더급 결승에서 이흥수(성동체육관)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당시 그는 한양공대 1학년이었다. 

그후 75년 몬트리올 올림픽 선발전에선 페더급으로 출전 이거성(육군)과 접전을 벌였으나 판정패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진 못했지만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출전한 황의경(연세대), 1948년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이자 서울 시장을 역임한 염보현(고려대), 70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우승한 조원민(서울대) 을 연상시킬 정도로 엘리트 복서로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대표적인 복서다. 또한 황해남은 복서 출신 중 이일호, 최만성, 유제두 관장과 함께 자식 농사에 성공한 대표적인 복서로 손꼽힌다. 

맏딸 황희연은 항공대학을 다니다 항공시설이 좋은 한서대학교 항공운항과로 편입해 현재는 대한항공 2천5백 명 조종사 가운데 단 10명에 불과한 여성 조종사로 활동 중이고, 둘째 딸 황희선 양은 2008년 열린 예산 황토아가씨 선발대회에서 진(眞)에 선발되어 수년 동안 예산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이일호, 최만성 두 전직복서는 서울대 출신의 자녀를 3명 배출했고 유제두 관장은 2남1녀를 모두 서강대와 성균관대에 졸업시켜 주목을 받은 복싱인이다. 

21세기 체육관 강택주 관장은 1959년 전북 전주 출신으로 전주 종합체육관에서 탁형권 관장의 지도로 복싱을 수련한 페더급의 유망주였다. 70년대 후반 서울로 입성 동양 페더급 챔피언 최문석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복싱의 완성도를 높혀 전국체전과 대통령배에 서울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모스크바 올림픽 선발전에 포커스를 맞추고 훈련하던 중 돌연 최문석 관장이 돌연 체육관을 폐관하고 인천으로 이전하면서 난관에 봉착한다. 최문석 관장이 인천에서 배출한 선수가 후에 1988년 서울 올림픽 밴텀급 국가대표이자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이다. 

결국 강택주는 22전 17승(8KO승) 5패의 아마전적을 뒤로하고 1980년 상도동에 있는 서순종 회장이 운영하는 세기체육관에 입성해 프로복서로 활동을 한다. 현란한 헤드웍과 보디웍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사정거리 안에서 테크닉의 향연을 펼치며 9전8승(3KO승)1무를 기록하며 세기체육관의 간판복서인 김지원, 최진식 등과 트로이카를 형성한 유망주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소중했던 사각의 링에 추억들을 빗물 속에 흘려보낸 불운의 복서였다.

동료 복서인 IBF Jr 페더급 챔피언 김지원은 “강택주는 날 다람쥐처럼 빨라 스파링을 할 때 타점 맞추기가 힘겨웠다”고 복서 강택주에 대해 회고한 점을 상기시켜보면 그가 정상급 기량을 지닌 복서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살이 새옹지마’라고 이후 사당동에서 강택주는 수산업에 투신해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둬 오래전 동작구에 APT를 마련 하는 등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 후 그는 ‘이젠 생선냄새 보다는 땀 냄새를 맡아보자’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으로 되돌아가 8년 전에 이곳 동작구 이수역 근처에 세기 복싱 체육관을 개설해 컴백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고 인근에 사는 백승영 경감이 21세기 명예사범으로 틈틈이 관원들을 지도하면서 체육관 활성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세기체육관 강택주 관장
세기체육관 강택주 관장

필자가 4명의 전직복서를 취재하면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선택을 잘했다는 점이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인생은 B(Birth) 와 D(Death)사이에 C(Choice)라고 갈파했다 .삶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 선택(Choice)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 선택 중 최고의 선택은 역시 배우자의 선택이란 점에서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복싱에서 정상 등극보다 롱런이 훨씬 힘겹듯이 사회에서 한번의 성공은 쉬워도 그 성공을 길게 유지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성공을 유지하는 것은 아내의 절대적인 내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권철휘 감독이 제작한 영화제목이 생각 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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