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 스포츠 오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의 주인공 '무하마드 알리'가 오늘도 타이틀전 방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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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전 스포츠 오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의 주인공 '무하마드 알리'가 오늘도 타이틀전 방어에 성공했다
  • 정지윤 기자
  • 승인 2020.11.14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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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무하마드 알리의 생애
20세기 최고의 권투선수이자 사회운동가 '무하마드 알리'
[사진=무하마드 알리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무하마드 알리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윈터뉴스 정지윤 기자] 54년전 오늘은 20세기 최고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클리블랜드 윌리엄스를 TKO 시키고 3번째 세계챔피언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날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는 알리가 남긴 명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이다. 해당 명언은 알리가 1964년 당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상대하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외친 말이다. 대부분의 도박사들은 그의 패배를 예상했다. 그는 당시 주류 헤비급 선수들과는 다른 스타일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힘이나 맺집에 의존하는 거친 스타일이 아닌 빠른 스텝과 유연성을 무기로 링위를 돌아다니며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근대적인 스타일을 가진 선수였다. 알리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리스턴을 이기고 복싱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아마추어 전적은 108전 100승 3무 5패이고, 프로 통산 전적은 61전 56승(37KO승) 5패다. 세차례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고 통산 19차례 방어에 성공했다. 그의 전적이 증명하듯 그는 링 위에서 최고의 선수였다. 그리고 링 아래에서는 불평등과 인종차별에 맞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킨 선수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사진=무하마드 알리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무하마드 알리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알리는 미국의 흑백 분리 정책이 존재하던 1942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에 복싱을 처음 접했으며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뒤 1960년에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여전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이 가는 레스토랑에는 출입하지 못했다. 

금메달을 딴 후 알리는 프로로 전향했다. 알리는 연승을 이어갔으며 처음으로 챔피언에 올랐을 당시 당당하게 자신의 신념을 밝히기도 한다. 알리는 챔피언 타이틀전 직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슬람교(네이션 오브 이슬람)로 개종했다고 말하며 이름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는 것을 밝힌다.(무하마드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다.) 당시 흑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흑인 민권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미국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종교였다. 특히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중요한 스포츠 스타로서는 개종 사실을 밝히는 것이 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알리는 불평등과 인종차별에 맞서는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드러냈다.

알리는 링 위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1967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반대하며 징집을 거부했고, 이에 챔피언 타이틀 박탈, 선수 자격정지,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알리는 법정 공판에서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내 조국에서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데 남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요? 베트콩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무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사람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합니까?"라고 변론했고 3년이 지난 후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무하마드 알리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무하마드 알리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알리는 1970년에 무죄를 선고받긴 했으나 긴 법정싸움 이후 권투 전성기의 나이가 지나있었다. 반면, 링 밖의 미국사회에서 알리는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주류 백인 사회에서 병역 거부는 반국가적 행위로 치부됐었지만, 베트남전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알리의 징병 거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또 1960년 대 흑인민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미국 흑인들의 권익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알리에 대한 응원이 이어졌다.

그는 복귀 후 첫 두 게임에서 지며 전문가들은 그가 다시 챔피언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특유의 집념과 자신감으로 1974년 당시 챔피언인 조지 포먼과의 경기에서 이기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다시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특히 이 게임은 알리가 로프의 반동을 활용한 기술을 창시한 시합으로 그의 가장 위대한 시합 중 하나로 꼽힌다. 알리는 이후 다시 연승을 하며 오랜기간 타이틀을 지켜내다가 1981년 트레버 버빅과의 경기에서 패배를 끝으로 40세의 나이에 은퇴한다.

알리는 은퇴 3년 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지만, 사회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알리는 개발도상국에 음식과 의료지원을 하는 유엔 외교대사로 활동했으며, '무하마드 알리 파킨슨병 연구센터'를 지원하는 등 사회 공헌에 힘썼다. 알리의 이런 공로는 인정받아 2005년 미국 대통령이 수상하는 '자유의 메달'을 수상했고,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선정되어 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했다.

알리는 2016년 6월 3일 파킨슨 병에 의한 호흡기 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알리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자 세계 각지에서 그를 추모했다. 버락 오바마는 부인 미셸 여사와 함께 낸 성명에서 “알리는 링 위에서의 투사나 마이크 앞의 시인으로서 재능 있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알리는 권투 실력에 시대 정신 모두를 갖춘 스포츠 스타이자 흑인 사회의 영웅이자 아이콘으로 존경받았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언변, 사회적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는 투쟁 정신, 역대 최고의 권투 실력 등 당시의 사회 상황을 완벽하게 대변한 인물로 복싱을 넘어 인류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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