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길과 함께 목포대학 복싱 전성기를 구축한 천재 복서 이현주'[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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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과 함께 목포대학 복싱 전성기를 구축한 천재 복서 이현주'[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 김종민
  • 승인 2020.11.27 09: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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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스포츠 산책]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가을 어느날 문성길 챔프와 함께 그의 탄생지인 전남 영암에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도착해 1박2일을 함께 머문 적이 있었다.

그가 나고 자란 생가터에서 드넓게 펼쳐진 영암의 산하(山河)를 바라보니 이곳이 바로 천하의 명당터가 아닌가 하는 들었다. 한국 유도 여자선수론 최초의 세계선수권 2연패 달성과 함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유도의 여제(女帝) 조민선,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인 최희섭, 영암 아리랑을 부른 톱가수 하춘화가 바로 이 고장 출신이고 백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5세기 초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 일본문화의 성인(聖人)으로 불리면서 아스카문화의 창시자 왕인 박사와 고려 시대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태조 왕건의 스승인 도선 국사가 바로 영암에서 탄생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필자와 문성길이 방송 스태프들과 함께 월출산으로 자리를 옮겨 촬영하는 과정에서 운명처럼 만난 복서가 목포대 출신의 이현주다. 이현주는 1961년 7월 18일 전남 고흥 태생으로 그는 본래 육상 중장거리 선수로 전남체육중에 입학하였는데 전남체고에 78년 입학할 때는 복싱으로 전환 입학을 한다. 이현주의 동료 복서이자 최초의 세계대회 우승자인 박기철은 당시 “현주는 반사 신경과 지구력이 뛰어난 파이터로 데미지를 입으면서 타격전을 펼치는 문성길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복서”라고 평했다. 사실 박기철, 문성길, 이현주를 비롯해 전칠성, 김동길, 고희룡, 진행범, 곽귀근, 김유현, 최우진 등 한 시대를 풍미한 61년생 소띠 해 국가대표 출신의 복서들은 조성민, 박찬호, 임선동, 손경수, 박재홍, 차명주, 김종국, 송지만으로 이어진 73년 소띠 프로야구 선수들과 함께 한국 스포츠계의 태백산맥 같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핵심 세대들이다.

전남체고 전성기 핵심 멤버인 박기철 과 이남의(우측)

이런 상징성있는 복서 이현주는 1979년 제9회 대통령 배 대회에 전남 대표로 밴텀급 결승에 올라 충남의 지택림(한국체대)에 패했지만 9월엔 학생대표로 대만에 원정 국제 감각을 경험한 뒤 79년 12월 모스크바 올림픽 2차 선발전 페더급 결승에서 이거성, 박태국, 서인석, 최진식 등 역대급 복서들을 꺾은 전학수(수경사)를 접전 끝에 판정으로 잡으며 이변을 연출했다. 다만 최종 결승전에서 박태국(해태)에 분패해 고개를 숙였다.

당시 이현주를 위시해 최초의 고교생 세계 선수권자인 박기철,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남의 와 김동길, 그리고 송중석 김종섭, 성두호 등이 포진된 1979년 전남체고 복싱팀은 1971년 고교야구 전국대회 5관왕의 대업을 창출한 황규봉, 이선희, 배대웅, 천보성, 정현발, 구영석, 함학수 등이 포진된 경북고와 1979년 변병주, 박경훈, 백종철, 백치수 등이 활약해 고교 축구 역사상 초유의 5관왕을 달성한 대구 청구고 축구부에 비견될 최고의 전력이었다. 80년 제1회 회장 배 전국선수권을 제패한 이현주는 그해 6월 한일 국가대항전에서 일본 대표 야구비를 단 14초 만에 KO 시켜 주목을 받은 후 1981년 장성호 권현규와 목포대에 진학한 이후 1년 후배들인 전칠성 문성길과 독수리 5형제를 형성 목포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전남체고를 창설한 이재인 감독과 이남의, 허영모, 박기철(좌측부터)

그해 한일 국가 대항전 2년 연속 우승에 이어 제11회 대통령 배 대회를 석권한 이현주는 성난 들소 조규남(원광대)을 상대로 카운터 펀치를 적절히 구사해 완봉으로 페더급을 평정한 후 국제무대로 시선을 돌린다.

그해 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 대회에서 홈 링의 블라시우마를 잡고 우승을 차지한 이현주는 4월의 킹스컵과 5월의 마르코스 배에서 각각 라이트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후 그해 11월 제2회 뉴욕 월드컵과 82년 5월에 뮌헨 세계 선수권, 6월의 제10회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단 한 차례의 빠짐도 없이 연속으로 출전해 결국 체력이 고갈된다. 마침내 아시아 선수권 준결승에서 경기 전날 심한 몸살감기로 최악의 상태에서 태국의 사와디 윙과 일전을 치러 무기력한 상태에서 2회에 경기가 스톱되자 은퇴를 염두에 둔 이현주는 82년 7월 뉴델리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국제대회 3관왕 고희룡(웅비)에게 패하자 달도 차면 기울듯 복싱을 접는다. 그의 나이 만 22살이었다.

81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 라이트급 우승자 이현주 경기장면
81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 라이트급 우승자 이현주 경기장면
태릉선수촌에서 김동길과 이현주(우측)
태릉선수촌에서 김동길과 이현주(우측)

이현주는 짧고 굵게, 임팩트 있게 선수 생활을 청산하고 대학 졸업 후 제주 체육회와 전남 체육회에 근무하다 새천년에 전남체육중이 무안에 신설되자 교사로 임명되어 재직한다. 2003년 전남체고 복싱부 창단과 맞물려 복싱 감독으로 부임한 이현주는 2018년과 2019년 고등부 56kg에서 전국체전 2연패를 달성한 고성훈을 발탁해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공-수-주 3박자를 겸비한 사우스포 고성훈은 국가대표 제조기로 명성을 날린 한정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대전대로 진학해 제2의 김기택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망주이다. 더불어 필자는 그가 빨리 복싱을 접고 용퇴를 한 점에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경북체고 곽귀근 감독과 전남체고 이현주 감독
경북체고 곽귀근 감독과 전남체고 이현주 감독

동물의 왕국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치타는 속도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최대 시속이 120km를 상회하니 빛의 속도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 치타는 300m 이상을 달리면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체온이 급격하게 치솟아 때론 생명이 위험해지기에 사정권 내에서 승부구를 던져야 한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죽자 살자 달리는 사냥감의 달리기 실력도 만만치 않다 보니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숨 가뿐 시간이 흘러갈수록 한계점이 다가오는 까닭이다. 치타는 이쯤에서 결정해야 한다, 더 쫓아가야 할지 그만둘지 말이다. 이럴 때 초보 치타와 노련한 치타의 명암이 엇갈린다. 노련한 치타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뒤돌아선다. 이처럼 인간사도 포기하지 말아야 성공한다는 의미를 모든 부분에 적용하면 위험하다.

필자는 1979년 9월 6일 세기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은퇴를 선언하고 헤비급 타이틀을 반납한 후 불혹의 나이인 1980년 10월 2일 컴백하여 4번째 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탈환하기 위해 과거 자신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래리 홈즈가 갖고 있던 WBC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해 10회 TKO 패했던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 복싱인 중 한 명이다. 알리는 그 경기 후유증으로 4년 후 파킨슨병 판정을 받은 후 무려 30년간 병상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숨을 거뒀다. 야구 격언에 투수 교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있듯이 32년간 복싱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견해로는 투기 종목인 복싱의 은퇴는 야구의 투수 교체처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을 감히 하고 싶다. 당장은 아쉽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포기할 때 포기 하면서 길게 펼쳐진 삶의 다음 라운드를 빨리 준비하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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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현 2020-11-27 12:28:10
이현주감독님 휼륭한 분인지 이 기사를 보고 느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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